중요!) 화봉요원 484화 초반부 나레이션(引言) 오역수정. by 찌질이 ver2



入木三分,始覺分寸未夠。

三分,就剩下三分。


나레이션이자, 484화의 시작을 알리는 인언(引言)입니다. 글의 시작을 알리는 가장 중요한 부분인 인언(引言)부터 해석을 병신같이 해버리면 끝까지 해석이 꼬여버리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저는 일전에 그렇게 해석을 병신같이 했습니다. 하아..ㅠㅠ

저는, 入木三分를 "왕희지의 고사"에서 따온 성어로 파악해
1. 먹물이 목판 깊숙이 스며들다. 2. 견해가 날카롭거나 관찰력이 예리하다. 등으로 그냥 해석해 버렸는데 이는 잘못된 번역입니다. 무조건적인 인용구를 써놓는게 아니라, 문맥과 상황에 비추어가면서 해석해야죠.
시팔....찌질아..이런 똥같은 번역을 싸지르면 어떡하니...

일단 저 두 인언(引言)구의 화자는 [한현]입니다. [한현]이 화봉요원에 처음 등장했을 때, 그는 천하의 대세를 논평하였습니다. 천하의 정국이 삼분으로 흘러간다면서, 그 세자리 중 두 좌석은 조조, 손권이 차지했다지만 아직 한 자리는 주인없는 자리라면서, 자신들도 능히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다고 말합니다. 바꿔말하면, 한현은 자신이 [유비]를 대신해 삼분구도의 한 축을 담당할 것이라 엄포를 놓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겁도 없이 남은 삼분(三分)의 한 좌석을 놓고 유비랑 싸우게 된 것이죠.
하지만 4군 vs 유비군의 전투가 계속될수록,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면서 [한현]은 객관적인 실력차를 깨닫게 됩니다. 몰리고 몰려, 장사 본성에 처박혀 농성을 준비하는 때가 되서야, [한현]은 유비군이 얼마나 음흉하고 대단한 지를 깨닫게 되지요. 이에 다음과 같이 한탄하지요, 자기네들로는 삼분천하에 발을 들여놓은 것만으로도 허덕이는 지경이라구요.

때문에 저 문구는 단순히 "왕희지의 고사"라고 해석해서는 아니 될 말입니다. "入木"은 먹물이 나무에 스며든 것이 아니라, 현 상황에 발을 들인 한현의 처지를 말하는 것이고 "三分"는 먹물이 세 푼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삼분 천하]의 [삼분]을 말함입니다.
[한현의 처지]와 연결해서 해석해야 옳은 번역이지요. 즉, 다음과 같이 해석해야 합니다.

入木三分,始覺分寸未夠。
삼분(三分)에 잠시 발을 들여 놓아서야, 비로소 (한현은 자신의 주제로는) 역부족임을 깨닫게 되었다.
三分,就剩下三分
삼분(三分), 오로지 삼분만이 남았을 뿐. 
(천하사분天下四分은 될 수 없으며, 또한 한현은 천하삼분의 한 좌석을 차지할 수도 없다.)

分寸未夠 는 달리 해석할 수도 있는데, [정도가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分寸未夠를 이렇게 해석할 시, 천하는 [삼분]으로는 아직 족하지 않으니 [분(分)] 하나가 더 끼어들어도 무방하다는, [천하사분(天下四分)]도 괜찮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 天下四分에 대한 주장은 바로 다음에 오는 인언(引言)구에 의해 부정됩니다.

分寸未夠
삼분(三分)으로는 아직 족하지 않지 않나. (그러니 천하사분天下四分으로 해도 무방하지 않겠냐)
三分,就剩下三分
아니, 삼분三分뿐이다. 천하에 놓인 의자는 오직 세자리 뿐. 4개가 되어서는 아니되며, 절대로 될 수조차 없다.
하지만 한현 네 주제(分寸)로는 역부족(未夠)이기에 유비와 남은 한자리(一分)를 놓고 벌이는 싸움에서 질거야.


결론적으로 여기서 그냥 번역이랍시고 왕희지의 고사를 고대로 옮겨와서는 절!대! 아니되었습니다. 앞의 줄거리를 감안해 문맥을 파악해서 번역해야 했습니다.
제가 얼마나 번역을 좆같이 못하는지 또 다시 확인하고 가는군요. 우울하네요. 잘못된 번역 때문에 484화의 전체 내용 이해에 무리를 가게 만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하아.. 찌질아 너 이리와서 좀 맞자...


508화 주유의 말말말. by 찌질이 ver2



현재 형주를 둘러싼 인물들의 "첫번째 행보(一步)"를 요약하는, 아주 중요한 대사입니다.
주유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순욱走一步 조조也走一步
순욱이 한 걸음을 걷자, 조조 또한 한 걸음을 걸었음이요,

如無意外 익주유장也將以精誠 走出第一步
다른 변수가 존재하지 않는 한 익주 유장도 정성을 다한 첫 번째 걸음을 내딛을 터.

然後 明察秋毫的제갈량也會向前一邁
뒤이어 미세한 것 하나 빠트리지 않는 제갈량도 앞으로 한 발 내딛을 겁니다.

순욱의 첫번째 걸음 : 제갈량과 협조, 황상을 빙자해 [가짜 성지]사건을 천하각지에 배포. 손권이 [거기장군]이 되도록함. 삼분천하의 구도를 만들어 조조의 위공등극을 최대한 저지시킴. 삼분三分의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한실의 명맥또한 길어짐.

조조의 첫번째 걸음 : 순욱의 [가짜 성지]를 묵인. 순욱과 정치적 결별 표명.(후임자를 세움) 두번째 성지인 "유비를 형주목에 봉한다"를 재배포. 그 사이사이에 조비를 후계자로 세우는 작업의 일환인 [오관중랑장]에 봉함. 아울러 조조, 하후씨의 대다수 요인들을 진급시킴과 동시에 봉지를 내림

유장의 첫번째 걸음 : 강동과 연계하여, 돌아가신 형님(유표)를 대신해 형주를 맡아보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움직임

제갈량의 첫번째 걸음 : 이들의 움직임을 모조리 변수에 넣고 다시 방정식을 계산, 그 해를 가지고 "앞으로" 한 발 내딛을 것. (그 계략이 무엇인지는 주유도 모르는 것 같음)

굵직굵직한 네 인물들의 현행보를 짧게 요약한뒤, 주유는 다음과 같이 요약을 내립니다.

而衆人的第二步 將是其負大舟的驚人殺着
그러니 모두의 다음 2보는 큰 배를 실어 나를만한 어마어마하고 치명적인 한 수일 터.

즉, 이 네 인물들이 다음에 시전할 계략(=행보=걸음)은 무시무시할 것이란 주유의 촌평이지요. 이 다음의 말은 엄청나게 중요한 말입니다. 다같이 살펴보도록하죠. 주유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水狹則不深 但從來沒有一道戰策 有如斯積水之厚

전에 적은 번역은 오역입니다. 고쳐야 합니다..

오역 : 물이 너무 좁다하면 깊을 리 없다 했지만, 물이 충분히 고일만큼의 전책(戰策)은 아직껏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X)
고친 번역 : 물이 너무 좁다하면 깊을 리 없는 법이라 하나, 단 하나의 전략없이도 이토록 물이 충분히 고여 있을 줄이야.

개xx 같은 번역이네요. 정말. 참. 할 말이 없습니다..하하..정말 쪽팔리네요. 문맥도 못읽는 모지리.

<주유의 말 해설>
1) 예상컨데 저4명의 다음 행보(제2보)는 큰 배를 실어나를 만한 어마어마한 한 수일 거다.
2) 그런데 큰 배를 실어나르기 위해서는 물이 충분히 쌓여 있는 상태여야한다.
2) 본디 물이 너무 좁으면 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바꿔 말하면 큰일을 도모함에 있어서는 성급하지 말고 천천히 해야 물이 쌓이는 것이다.
3) 헌데 별다른 전략 하나 없이도 이렇게 배를 띄울만큼 물이 충분히 차올랐을 줄이야..

쉽게 고쳐써보면

"저4명은 이미 큰 배를 실어나를 준비를 마쳤네. 큰일을 행함에 있어선 신중하라는 말을 들었는데, 어떻게 뭐 하나 하지 않았는데도 배를 띄울만한 환경이 되었느냐 이거야."

오역을 고쳤으니 좀 더 깊게 나아가 볼까요. 일단 앞문장 水狹則不深 는 출전이 있는 문장입니다. 제가 일전에 출전이 <<한시외전>>이라고 했는데요, 사실 출전은 <<신서(新序)>> 에서 먼저 나왔습니다. 둘 다 내용은 동일하게 '포초'라는 인물에 관한 일화와 이에 대한 촌평을 적고 있습니다. 단어만 몇 개 다를 뿐 완전 동일한 내용이에요.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夫山銳則不高, 水狹而不深, 行特者其德不厚, 志與天地疑者, 其為人不祥.
무릇 산이 너무 뾰족하면 높을 수가 없고, 물이 너무 좁으면 깊을 수가 없는 법. 마찬가지로 행동이 너무 특이한 자는 덕이 후할 수가 없으며, 뜻이 천지에까지 뻗쳐 비기고자 하는 자는 그 사람됨이 불상不祥하다.

전문을 감상하시고 싶으면 클릭! (클릭하면 이동)

"뾰족하다"라는 말은 물리적인 의미의 "뾰족함"이 아닙니다. "예기(銳氣)"를 말함입니다. 사람이 뽐내고 과시하는, 자기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즉, 여기서 "뾰족하면 높을 수가 없다"는 말은, 자기자신을 너무 드러내거나 재주(혹은 자신의 정견政見, 태도 등)를 지나치게 뻗대다가는 큰일을 도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서(新序)>>에서 총평하듯, 알맞을 때에 다다랐을 때 그칠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죠.

주유가 언급한 부분은 그 뒷문장인 水狹而不深 입니다. "물이 너무 좁으면 깊을 수가 없다"라, 과연 어떠할 때 물길이 좁을까요? 바로 물살이 빠를 때입니다. 즉, 물살이 지나치게 급한 곳에서는, 깊어질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이 또한 앞의 "뾰족함"과 상통하지요. 지나치게 성급하거나 급진적이여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럼 만화로 돌아와 水狹而不深 가 누구를 가르키는지 보도록 하죠. "물살이 빠른(=행사行事이 지나치게 급한)" 자가 누굴까요? 순욱? 조조? 유장? 제갈량? 네명 다 아닙니다. 행사가 지나치게 빠른 자는 다름아닌 [주유], 본인입니다.

508화에서 조조측 병사들이 말하는 부분 :
하지만 이같은 용병을 구사하는 놈은 완전히 미쳤다고밖에 할 수 없어!(不過如斯用兵 簡直是瘋了一般!)

그리고 여몽이 남문南門으로 진입한 주유를 비꼬는 부분 :
바로 성 남문으로 뛰어드는 천둥벌거숭이가 누굴까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주 대도독이었네. (從城南直入的亡命之徒 果然是주대도독)

주유는 현재, 옛적 손책이 그랬던 것처럼 행사行事가 미치도록 급진적입니다.(疯狂激进). 다른 네명이 심혈을 기울인 [첫번째 행보]를 내딛은 반면, 주유는 지나치게 빨리 첫번째 걸음을 내딛었지요.
물살이 지나치게 빠르면, 물이 충분히 고이지가 않을 것이고(水之積也不厚), 물이 충분히 고여있지 않다면 큰 배를 실어나를 수가 없습니다. 다른 이들이 가슴을 활짝 펴고 웅지를 펼칠 때에(=큰 배를 실어나르다) 주유 본인만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죠.

즉, 저 문장은 하나의 암시역할도 합니다. 주유의 제2보로는 큰 배를 실어나르기엔 힘이 부족할 것이라고...

=====

또 하나 짚고 넘어갈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주유가 언급한 水狹而不深 의 출전은 <<신서>> 7-26장이라 밝혔습니다. 이 장의 내용은 "포초"에 관한 일화입니다. "포초"는 주(周)나라의 현자인데 세상의 혼탁함을 수치스러워해 산속으로 들어가 나물을 뜯어먹고 삽니다. 이를 본 자공(子貢)이 비꼬지요. 임금도 인정하지 않고, 나라도 인정하지 않는 주제에 무슨 이익을 취하고 있냐, 라면서요.
이에 포초는 더러운 세상에 굴종하면서 가볍게 살지 않겠다고 말하고는, 음식을 끊고 나무를 끌어안고 서서 죽습니다. 이에 <<신서>>는 포초의 행동거지가 너무 특이해 덕을 쌓기에 불가능하고, 제 뜻을 천지에까지 뻗치려 일부로 미친척하며 세상을 비난하는 모습이 상서롭지 못하다면서, 그 절도에 정도가 있어야 함을 말하지요.
내용은 짧은 논평과 함께 시구절 하나를 인용하면서 마무리되는데요, 이 맨 마지막 문구가 눈에 밟히는 군요.

....<<시詩>>에는 이렇게 노래하였다.
“모든 것이 끝났네! 하늘이 이를 정하시니, 무슨 말을 하리오?”
詩曰: 「已焉哉! 天實為之, 謂之何哉?」

여기서 언급하는 <<詩>>는 <<시경>>이고, 언급된 구절은 [국풍國風] 패풍邶風 - 북문(北門)입니다. 북문이라, 508화에서 주유는 목숨을 신경쓰지 않고 무리하게 [남문(南門)]으로 곧장 돌격해 들어갔습니다. 이제 감이 오는 군요. 진모 작가는 주유가 [남문]으로 들어가서 [북문]으로 빠져나올 것을 안배한 것입니다. 이는 <<시경>> 북문(北門)에 나오는 화자의 상황과 주유의 상황이 일치함을 뜻하는 것이고요.
그럼 <<시경>>[국풍國風] 패풍邶風 - 북문(北門)을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북쪽에 있는 문(北門)>>

북문을 나서니 근심 걱정 그득하네
초라하고 가난한 꼴 내 사정 누가 알까
차라리 생각 말자 하늘이 하는 것을 [已焉哉 天實爲之]
어찌할 수 없잖아. [謂之何哉]

왕의 일에 시달리고 정사에 바쁘다가
돌아오면 집 사람들 앞 다투어 나를 욕해
차라리 생각 말자 하늘이 하는 것을 [已焉哉 天實爲之]
어찌할 수 없잖아. [謂之何哉]

왕의 일에 시달리고 정사에 바쁘다가
돌아오면 집 사람들 앞 다투어 나를 탓해
차라리 생각 말자 하늘이 하는 것을 [已焉哉 天實爲之]
어찌할 수 없잖아. [謂之何哉]


>> 已焉哉 天實爲之 謂之何哉 : 아서라! 실로 하늘이 하시는 일이거늘 말해 무엇하리! ; 하늘이 이를 정하시니, 무슨 말을 하리오!

[모시서]에 이 시는 뜻을 얻지 못하고 낮은 벼슬로 가난하게 사는 위나라의 충신이 정사가 올바로 되지 않는 것과 자기의 불우한 처지를 읊은 것이라 하였습니다. 화자는 밀려오는 나랏일을 허덕대며 겨우겨우 처리하면서도, 그 봉급이 쥐꼬리만해 집에만 들어가면 매일같이 식구들의 욕을 들어먹습니다. 이것은 나라의 정사가 바로 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만, 그렇지만 또한 이는 하늘의 뜻이기도 한지라, 화자는 마지막 구절마다 "어찌하랴" 하면서 체념하는 것이지요.

종합해보자면, 주유가 남문으로 들어가 북문으로 빠져나오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고, 주유의 말로는 이미 하늘에 의해 정해졌다는 암시가 되겠습니다.


508화에 쓰였던 출전들. [수정완료] by 찌질이 ver2



而衆人的第二步 將是其負大舟的驚人殺着
그러니 모두의 다음 2보는 큰 배를 실어 나를만한 어마어마하고 치명적인 한 수가 될 터.

水狹則不深 但從來沒有一道戰策 有如斯積水之厚
물이 너무 좁다하면 깊을 리 없는 법이라 하나, 단 하나의 전략없이도 이토록 물이 충분히 고여 있을 줄이야.

弈之爲數 但棋子...
바둑을 두는 것은 비록 작은 기술이나, 다만 바둑돌은...


1) 且夫水之積也不厚(차부수지적야불후) 則負大舟也無力(즉부대주야무력) : <<장자 1권 소요유편>>

여기선 중국 철학의 권위자인 "앵거스 찰스 그레이엄"의 해석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해하기가 쉽거든요.

북쪽 넓은 바다[북명北冥]에 물고기가 한 마리 있으니, 그 이름이 곤鯤이다. 곤의 둘레가 몇 천 리가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물고기는 변화하여 새가 되니, 그 이름이 붕鯤이다. 붕의 등이 몇 천리가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붕이 가슴을 활짝 펴고 날아오를 때, 그 양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가 일렁일 때 남쪽 넓은 바다[남명南冥]를 향해 가려고 한다. (남쪽 넓은 바다는 하늘의 호수(天池)이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들(諧)]]에서 전하는 말로는, “붕은 남쪽 넓은 바다를 향해 가려고 할 때, 수면을 내려쳐서 물결을 일으키는데 그 물결의 파문이 장장 삼천 리까지 퍼져나가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나선형을 그리며 상승하는데 그 높이가 장장 구만 리에 달하며, 육 개월을 가서야 비로소 숨을 쉰다”고 한다. (<<제나라의 터무니 없는 이야기들[제해齊諧]>>은 경이로운 일들을 기록한 책이다.)
하늘에 감도는 푸른빛은 하늘의 본래 색깔일까? 아니면 우리가 끝없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붕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모든 것이 위로 올려다 보이는 것과 똑같아져야 (아지랑이, 모래폭풍, 생물들이 서로에게 내뿜는 숨처럼 보여야) 비로소 더 높이 올라가기를 멈춘다.
물이 충분히 고여 있지 않으면, 큰 배를 실어나르기에는 힘이 부족할 것이다. 마루의 움푹 팬 곳에 한 잔의 물을 엎지르면, 거기서는 씨앗 한 톨이 한 척의 배가 된다. 그러나 그곳에 잔을 올려놓으면, 그 잔이 물을 다 메워버린다. 물은 그처럼 얕은데 배는 너무 크기 때문이다. 바람이 충분히 쌓여 있지 않으면, 붕의 거대한 양 날개를 실어 나르기에는 힘이 부족할 것이다. 그 새는 구만 리 높이로 올라가 아래로 바람이 가득 쌓이게 되면 그제야 안심하고 바람에 무게를 싣는다. 그리고 푸른 하늘을 등지고 시야가 맑게 트이면 그제야 남쪽으로 진로를 잡을 것이다.


>> 익히 알려진 [전통 문화 연구회]의 소요유편 해석과 차이점이라면, 앵거스 그레이엄의 경우 괄호에 넣은 내용이라 하겠다.
“南冥者(남명자) 天池也(천지야)[남쪽 넓은 바다는 하늘의 호수이다].” “齊諧者(제해자) 志怪者也(지괴자야)”[제해는 괴이한 일들을 기록한 책이다]”)을 앵거스 그레이엄은 장자가 차후에 추가한 부분이거나, 후대에 덧붙여 넣은 주석들로 보았다. 특히, 두번째 구절의 경우가 통용본에서는 순서가 다음과 같다.

齊諧者(제해자) 志怪者也(지괴자야) -(1)
諧之言曰(해지언왈) -(2) 
鵬之徙於南冥也(붕지사어남명야) 水擊三千里(수격삼천리) -(3)
搏扶搖而上者九萬里(박부요이상자구만리) -(4)
​去以六月息者也(거이육월식자야) -(5)

여기서 앵거스 그레이엄은 (1)번 부분, [제해는 괴이한 일들을 기록한 책이다]을 후대의 편집과정에서 따로 덧붙인 주석들로 파악하여, (5)번 뒤에 붙인 뒤 괄호를 써서 주석임을 나타내었다. 즉, 주해가 본문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너무 앞쪽에 위치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cf)

1-1) 가장 잘 알려져 있는 한국 [전통 문화 연구회]의 해석 : 해석순 (1)-(2)-(3)-(4)-(5)

제해(齊諧)라고 하는 사람은 괴이한 일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제해(齊諧)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곤이 남쪽 바다로 날아 옮겨 갈 때에는 〈그 큰 날개로〉 바다의 수면을 3천 리나 치고서 회오리바람을 타고서 9만 리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그리하여 여기 북쪽 바다 상공을 떠나서 6개월을 계속 난 뒤에 비로소 한 번 크게 숨을 내쉬는 것이다.”

1-2) 앵거스 찰스 그레이엄의 해석 : 해석순 (2)-(3)-(4)-(5)- (1) , (1)은 주석에 해당하므로 괄호를 친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들(諧)]]에서 전하는 말로는, “붕은 남쪽 넓은 바다를 향해 가려고 할 때, 수면을 내려쳐서 물결을 일으키는데 그 물결의 파문이 장장 삼천 리까지 퍼져나가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나선형을 그리며 상승하는데 그 높이가 장장 구만 리에 달하며, 육 개월을 가서야 비로소 숨을 쉰다”고 한다. (<<제나라의 터무니 없는 이야기들[제해齊諧]>>은 경이로운 일들을 기록한 책이다.)


2) 水徑則不深 : <<신서新序 146(7-26)>> 유향 저

146(7-26) 세상이 그르다 하여

포초(鮑焦)란 자는 낡은 옷에 살갗이 다 드러나 보이는 채로 삼태기를 끌고 나물을 뜯으러 나갔다가 길가에서 자공子貢을 만났다.
자공이 물었다.
“그대는 어찌 이런 모습이 되었습니까?”
이에 포초는 이렇게 말하였다.
“천하에 덕과 교화가 있으면서 버림받은 이는 많지요. 그러니 난들 어찌 이런 모습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내 들으니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데도 그러한 행동을 그치지 않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며, 윗사람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데도 간섭을 그만둘 줄 모르는 것은 염직廉直을 훼손하는 짓이라 하였습니다. 행동이 그릇되고 염직을 훼손하면서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 이는 이익에 미혹하여 그런 것입니다.”
그러자 자공이 이렇게 비꼬았다.
“제가 듣기로 그 세상을 그르다 하는 자는 그 세상에서 이익을 취하지 아니하며, 그 임금을 더럽다고 여기는 자는 그 나라 땅을 밟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대는 그 임금을 더럽다 하면서 그 땅을 밟고, 그 세상을 그르다 하면서 그 땅의 나물을 뜯고 있으니, 그 채소인들 누구의 소유이겠습니까?”
그러자 포초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하! 제가 듣기로 어진 이는 나가는 것은 중히 여기고 물러서는 것은 가벼이 여기며, 청렴한 자는 부끄러움을 쉽게 느끼고 죽음도 가벼이 여긴다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나물을 버리고 바로 선 채 낙수洛水 가에서 말라 죽고 말았다. 군자가 이 일에 대해서 이렇게 평하였다.
“청렴하고 강직하도다! 무릇 산이 너무 뾰족하면 높을 수가 없고, 물이 너무 좁으면 깊을 수가 없는 법. 마찬가지로 행동이 너무 특이한 자는 덕이 후할 수가 없으며, 뜻이 천지에까지 뻗쳐 비기고자 하는 자는 그 사람됨이 불상不祥하다.
[夫山銳則不高, 水狹而不深, 行特者其德不厚, 志與天地疑者, 其為人不祥]
포자는 불상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절도의 얕고 깊음이란 알맞은 정도에 다다랐을 때에 그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시詩>>에는 이렇게 노래하였다.
“모든 것이 끝났네! 하늘이 이를 정하시니, 무슨 말을 하리오?”

3) 今夫弈之爲數 小數也 : <<맹자 권11 고자장구 상 (告子章句 上)>>

11-9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왕이 총명하지 않은 것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없다, 설령 세상에서 가장 쉽게 자라는 것이라도, 하루 동안 햇볕을 쪼이고 열흘 동안 춥게 하면, 잘 자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임금을 뵙는 것 또한 드물고, 내가 물러나와 있으면 임금의 냉담함도 극에 이르니, 비록 선량한 마음의 싹이 있다 한들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겠는가?
비유하자면 바둑을 두는 것이 비록 작은 기술(弈之爲數)이지만, 마음을 오로지하고 뜻을 다하지 않으면 그것을 터득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혁추는 온 나라에서 바둑을 가장 잘 두는 자이다. 만일 혁추로 하여금 두 사람에게 바둑을 가르치게 하였는데, 한 사람은 마음과 뜻을 다하여 오직 혁추의 말을 듣고, 한 사람은 비록 듣기는 하나 마음 한편에는 백조가 날아오면 활과 주살을 당겨 쏠 것을 생각한다면, 비록 더불어 배운다 하더라도 (그의 성적은) 다른 사람만 못할 것이다.
이것은 그의 총명함이 남보다 못하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고 할 것이다.

>> 혁(弈)은 <<설문해자>>에서 “혁은 바둑이다(弈, 圍棋也)”라고 하였다.
>> 수(數) : 조기의 주에 “수는 기술이다(數, 持也)”라고 하였다.

맹자는 계속해서 환경이 사람의 사고와 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말하는 성선(性善) 역시 "사람마다 모두 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라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맹자가 한 말을 사용한다면 “하늘로부터 타고난 바탕으로 본다면 선하다고 할 수 있으니, 이것이 내가 말하는 본성은 선하다는 것이다. 선하지 않게 되는 것은 타고난 재질의 잘못이 아니다”(<고자장구 상> 제6장)라는 것이죠.
<고자장구 상> 제7장에서 환경이 사람의 사고를 바꿔놓은 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풍년에는 젊은 제자들이 대부분 게으르고, 흉년에는 젊은 자제들이 대부분 난폭해지니,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재질이 이와 같이 다른 것이 아니라, 환경이 그들의 마음을 나쁘게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11-9편도 이러한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역설하고 있지요. 비록 작은 기술에 불과한 바둑이라 하더라도, 지혜로운 사람은 환경을 좋게 만들어 스스로 정진하니 대성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환경을 어지럽힐 뿐 아니라 산만하니 성공이 있을리가요.




4) 以間離之 : <<손자병법약해>> 제1편 <시계> 싸우기 전에 헤아려라.

적의 허점을 노려라

용병의 요체는 적을 속이는 궤도에 있다.(병법에 고정된 본보기는 없다. 임기응변으로 적을 속여 이기는 것이 요체다). 싸울 능력이 있으면서 없는 것처럼 보이고, 공격하려 하면서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가까운 곳을 노리면서 먼 곳을 노리는 것처럼 보이고, 먼 곳을 노리면서 가까운 곳을 노리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또한 적이 이익을 탐하면 이익을 주어 유인하고, 적이 혼란스러우면 기회를 틈타 공략하고, 적의 내실이 충실하면 더욱 든든하게 대비해야 한다. (적의 전력이 아군보다 뛰어나면 반드시 굳게 지키면서 실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적이 강하면 정면충돌을 피하고 빈틈을 노려야 한다(적의 주력부대와 맞부딪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적이 기세등등하면 노하게 만들어 냉정한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유도한다(끊임없이 교란시켜 적의 힘이 분산되어 쇠약해지고 느슨해지기를 기다린다). 적이 조심하고 신중하면 자만심을 부추겨 교만하게 만들고, 적이 충분히 쉬어 안정되어 있으면 계책을 통해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지치도록 만든다(미끼를 내걸어 적을 유인함으로써 식량과 전력을 낭비해 지치도록 만드는 것을 말한다). 적이 단합되어 있으면 이간하여 분열시킨다. 親而離之(첩자를 보내 이간하는 계책을 말한다 以間離之). 적이 미처 방비하지 못한 곳을 치는 공기불비(攻其無備)와 적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때 치는 출기불의(出其不意)를 구사한다(적의 가운데 군기와 전력이 느슨한 부대를 골라 집중공격하고, 적이 예상치 못한 빈틈을 노려 불시에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병가에서 말하는 승리의 이치다. 이는 너무 오묘한 까닭에 어떤 고정된 이론으로 정립해 미리 전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병서에 나오는 모든 이론은 병도의 오묘한 이치 가운데 일부가 밖으로 흘러나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용병은 늘 상황변화에 따라 임기응변해야 하는 만큼 고정된 형세가 없다. 마치 물이 지형에 따라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꿔가며 흐르는 것과 같다. 적을 맞이해 싸우는 실전에서 구사되는 무궁무진한 임기응변의 이치를 어떤 고정된 이론으로 정립해 미리 전수할 수 없다고 한 이유다. 그래서 말하기를, “장수는 냉철한 마음으로 적정을 파악해야 하고, 날카로운 안목으로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무릇 전쟁에 임해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묘산(廟算)을 통해 승리를 점칠 수 있는 것은 이길 조건을 충분히 갖추었기 때문이다.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승리를 예측하지 못하는 것은 이길 조건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묘산’이 주도면밀하면 승리하고, 허술하면 승리하지 못하다. 하물며 묘산이 없는 경우이겠는가? 나는 오사(五事)와 칠계를 통해 전쟁의 승패를 미리 내다볼 수 있다. (나는 병도의 이치에 비추어보며 승패를 예측한다)

[해설]
궤도는 적을 속이는 일체의 행보로 전략전술의 기본 이치를 뜻한다. 있어도 없는 것처럼 보여 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 요체다. 적이 충실하면 단단히 방어하고, 적이 강하면 피하고, 적을 격분시켜 사리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들고, 비굴함을 보여 적을 교만하게 만들고, 적이 편안하면 피로하게 만들고, 적이 결속되어 있으면 결속을 와해시킨 뒤 불시에 적의 허점을 찌르고 들어가는 것이다.
조조는 궤도를 궤사詭詐로 풀이했다. ‘궤’는 단순히 상대방을 착각에 빠뜨린다는 뜻에 지나지 않으나 ‘사’는 말을 꾸며내 ‘사기를 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도덕적으로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으나 백성의 생사와 나라의 존망이 걸린 전쟁에서는 불가피하다. 적을 철저히 속일수록 뛰어난 계책이 된다.
노이요지(怒而撓之)느 적의 사기가 왓어하면 내부를 교란시켜 사기를 꺾어야 한다는 뜻이다. ‘요지’를 조조는 적의 사기가 쇠미해지고 헤이해질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의 대기쇠해(待期衰懈)로 풀이했다. 적을 더욱 분노하게 해 판단을 그르치게 만든다는 뜻으로 풀이해도 통하기는 하나 문맥상 뒤에 나오는 비이교지(卑而驕之) 구절과 겹친다. 일이로지(佚而勞之)의 ‘일’은 안일할 일(逸)과 통한다. 병가지승(兵家之勝)의 ‘승’은 오묘한 이치를 말한다. 불가선전(不可先傳)의 ‘선전’은 말로 미리 전수한다는 뜻이다.
미전(未戰)의 ‘전’은 야수를 뜻하는 수(獸)와 창을 뜻하는 과(戈)자가 결합한 글자로 원래는 수렵을 뜻했다. <<설문해자>>는 투(鬪)로 풀이했다. 여기서는 작은 규모의 저투와 큰 규모의 전쟁을 모두 지칭한다. 묘산은 사당인 묘당(廟堂)에서 군신이 모여 논의 끝에 결정한 계책이라는 뜻이다. 고대에는 전쟁을 벌이기 전에 사당인 태묘(太廟)에서 일정한 의식을 거행하고 전쟁의 방침이나 계책 등을 논의했다. 여기서 전쟁의 준비과정을 묘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득산다(得算多)는 이길 조건을 구비했다는 의미다. 승부견의(勝負見矣)의 ‘승부’는 견見의 목적어가 앞으로 나온 것이다. 일종의 강조 법이다.

[임시] 화봉요원 508화 - 일보일계(一步一計) by 찌질이 ver2



시점은 다시 오나라로.

속수무책으로 펼쳐지는 오나라의 용병(用兵)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조조군. 성벽도 불타서 더이상 수비가 불가능한 상황. 이에 오나라 군대는 파성(破城)차를 이끌고 성벽을 부수고 들이닥칩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성문근처의 부대. 남문(南門)의 원병은 어디갔냐고 소리치지만, 돌아오는 건 남문 쪽도 기습에 발이 묶여 병력을 보내지 못한다는 대답 뿐. 그 와중에, 이런 용병을 구사하는 "누군가"를 비난하는 조조측 장군1과 2의 대사.

장군 1 : 又是突襲南門, 不會又是능통吧?
또 남문에 기습이라니, 이번에도 능통이냐?!

장군 2 : 不, 능통不在, 不過如斯用兵, 簡直是瘋了一般!
아니, 능통은 없다지만 이 같은 용병(用兵)을 구사하는 놈은 완전히 미친 놈인 것 같아!

성 요지 곳곳에 오나라 병력들이 들어닥치고, 뿔뿔이 흩어지는 조조군 잔당들. 빼앗은 성 지휘소내부에 오나라 참모진들이 모입니다.
한쪽 팔에 붕대를 감으며 등장하는 주유씨. 정사 역사대로, 주유는 부상을 입어가면서도 분전을 이어가는 와중입니다.



주유 : 要緊記 一旦我失去聯繫 就直接找정보
저와 연락이 두절되면 잊지말고 바로 정보를 찾아가도록 하고요.

여몽 : 從城南直入的亡命之徒 果然是주대도독
바로 성 남문으로 뛰어드는 천둥벌거숭이가 누굴까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주 대도독이었네.

여몽의 비꼬는 말에서, 위에서 언급되었던 [미친놈]이 바로 주유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유는 생전 손책이 단기필마로 황조의 성에 돌입했던 것처럼(27권인가 28권인가.. 감녕이랑 일기토 뜨던 부분) 주유도 대도독의 위치임에도 불구, 단신으로 친히 남문에 짓쳐 들어간 것이죠.
여몽의 비꼬기에, 주유는 "생전 손책 형님도 그랬는데 왜 나한테만 뭐라함?"이라고 되묻지만 여몽은 고개를 절래절래 내젓습니다. 여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당신의 업적은 이미 강동에서 따라올 자 없고, 강동의 장병들도 그런 당신의 모습에 고무되어 더없이 강해졌다구요. (원문은 强不可破 ; 쓰러트릴 자 없을만큼 강해졌다) 하지만, 지금 당신의 위치는 일선에서 싸울 위치가 아니라 [대도독]이다. 모두에게 걱정을 끼쳐서야 되겠느냐.
웃음을 지우고 진지하게 말하는 여몽. 아마 주유의 모습에서 손책을 떠오른건 아닐까요. 손책처럼 불현듯 가버릴까 하는 마음이 담긴 진언입니다. 이에 주유는 다른 사람들은 이미 익숙해진지 오래라며, 여몽보고 쓸데없는 기우라며 일축합니다. 그리고 주제를 환기시킵니다 - 지금 집중해야할 건 그런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조인이 되돌아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지라고.

주유는 참모진들에게 조조의 의중을 말합니다.
조조는 조인을 통해 [형주전선]을 사수하는 것처럼 보이게 꾸며놓고, 성지(聖旨)계책을 통해 역습에 나설 것이라구요.
이는 506화에 나오는 조조의 <<손자병법 약해>>와도 일통합니다. 以利誘敵 敵遠離其壘 擊其空虛孤特也. 이익을 통해 주유를 멀리 떨어진 곳까지 이끌어내고, 주유와 손권 본대(정보가 있는 쪽)를 분단시킨뒤에 주유를 타격하는 것이죠.

이렇게 우리를 유인하는 것을 보니, 조조의 병법에는 다른 [묘책]이 있는가 여몽이 묻고 주유는 이에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내용의 골자는 502화에서 순욱이 했던 말과 동일합니다.

주유 : 今年是형주不幸, 却是北方大盛之時, 此刻的商收乃강동十倍以上
올 한 해 형주엔 불행이 이어진 반면, 북방은 크나큰 성세를 맞이했습니다. 지금 상인들이 벌어들인 수입만해도 강동의 열 배 이상에 달할 정도죠.

그리고 이런 북방에 성세를 가져다준 인물은 [순욱]이 아니라, 순욱의 [후임자]라고 합니다. 조조가 가진 [묘책]은 순욱의 [후임자]인 것이죠. 강동과 열배 이상의 생산량을 만든 [후임자]에게 주유는 '청출어람'이라는 말까지 써가며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 [후임자]의 내정능력은 전임자인 순욱을 가뿐히 뛰어넘어서, 이대로 간다면 조조는 다시한번 '일전의 남하'를 재시행 할 수 있을 정도라 하지요. 대체 얼마나 능력이 뛰어나면 '적벽대전'을 다시 한 번 일으킬 수 있을 정도라 칭찬하는 걸까요.

그럼 주유는 이런 좁혀지지 않을 격차를 어떻게 해결하려는 걸까요. 주유는 다음 키워드를 읊습니다 [익주]
주유는 익주의 장점을 다음과 같이 나열합니다.
1) 천험의 요새
2) 토지가 비옥하고 풍성하며 사람도 많다.
3) 나서면 공세를 취할 수 있고, 물러나면 쉽게 지킬 수 있는 땅.
결론 : 익주는 득천하(得天下 ; 천하를 얻다)의 초석.

주유 : 只要發展得宜 必能與北方爭輝
적절히 발전만 거듭한다면, 능히 북방과 더불어 순위를 다툴 수 있습니다. (爭輝는 爭輝日月의 줄임말로서, 해석하면 '일월과 밝음을 다투다'라는 뜻.)

하지만 참모진은 의아한 시선으로 주유를 바라봅니다. 이에 주유는 상징적인 한마디로 의문을 일축시킵니다.
"그 옛날 보잘 것 없는 일개 흉노가 대한(大漢) 성세를 무너뜨렸던 사실을 기억하시길."

보잘 것 없는 작은 부락에 불과했던 흉노가, 과거 대한의 성세를 망가뜨리고 끝장냈던 것처럼
보잘 것 없는 익주라는 땅을 가지고도, 열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북방을 찜져먹을 수 있다는 겁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부하의 보고가 전해집니다. 그 내용이란 [유비를 형주목에 봉한다]라는 두번째 성지.

주유는 이 성지의 목적을 단번에 간파합니다. 조조가 유비-손권을 이간질하려는 계책(以間離之)임을 알고 있습니다.
以間離之 또한 조조의 <<손자병법 약해>>에 실린 내용인데요, 以間離之의 골자는 [첩자]를 써서 이간하라는 내용입니다. 여기서의 [첩자]는 [성지]라 보면 되겠지요.
손권은 현재 유비를 구금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상황에서 [유비를 형주목에 봉한다]라는 성지가 천하 각지에 퍼져나간다면 손권은 악명만 쌓일 뿐이죠. 유비를 살려두면 살려둘수록 오히려 손권측에게 치명적인 수가 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유비를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죠.
주유는 이 두 번째 성지를 [조조가 찔러넣은 가시]라고 비유하면서, 손권측이 이 가시를 하루빨리 뽑고 천하를 이겨내지 못한다면 주공은 원술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것이라 하지요.

[성지 전달]도 이토록 수많은 간계가 뒤엉켜있는데, [성지의 내용]또한 겉으로 드러난 것이 다는 아니죠.
성지의 주내용은 유비를 형주목으로 봉한 것. 하지만 세인들은 보여준 것 하나 없는(沒作爲的 ; 성과가 없다) 유비가 목(牧)에 올랐다는 사실에 신경쓰지 않습니다. 세인들이 주목하는 것은 그 사이에 끼인 대목- 바로 조비를 [오관중랑장]에 봉한다는 내용이죠.
단순히 보면 그저 조비의 승급이지만, 조금만 식견이 있는 이들은 조조가 드디어 찬탈의사를 공공연히 드러냈음을 알테지요. 유비를 형주목으로 봉한다는 것에 스리슬쩍 끼워넣었지만, 배꼽이 배보다 커져버린 상황인거죠. 거기다 은근슬쩍 조씨가문, 하후씨가문의 요인들을 승급시키고 봉지를 하사시킨다는 내용도 적었고요.

주유는 웃음을 지으며 말합니다.
당초 조조가 대의라는 기치를 내걸고 거병했을 적에는, 열악한 환경이 이어지는 가운데에서도 각지의 유력 사족(仕族 ; 벼슬을 하던 가문)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 [사족]들 또한 패주(覇主)로 가는 길목에 있어선 장애물임은 변함없습니다.
그러니 이 성지는 더 크게 확장하면 [신구교체(新舊交替)]의 뜻을 공지했음을 볼 수 있다 합니다.

一個유비入강동 瀲起了千尺浪
유비가 강동에 들어서자, 천 척 물결이 파도치며 일렁이고
순욱走一步 조조也走一步
순욱이 한 걸음을 걷자, 조조 또한 한 걸음을 걸었음이요
如無意外 익주유장也將以精誠 走出第一步
다른 변수가 존재하지 않는 한, 익주 유장도 정성을 다한 첫 번째 걸음을 내딛을 테고
然後 明察秋毫的제갈량也會向前一邁
뒤이어 미세한 것 하나 빠트리지 않는 제갈량도 앞으로 한 발 내딛을 겁니다.

유비가 강동 입성 - 강동에 커다란 전환 - 순욱의 [가짜 성지] 전달 - 조조의 묵인 - 유장의 움직임 - (경적을 통해 유장의 움직임을 읽고서) 제갈량의 움직임.

이 말을 한 뒤 주유는 다음과 같은 말로 문장을 끝맺음 합니다.

而衆人的第二步 將是其負大舟的驚人殺着
그러니 모두의 다음 2보는, 큰 배를 실어 나를만한 어마어마하고 치명적인 한 수가 될 터.
水狹則不深, 但從來沒有一道戰策, 有如斯積水之厚
물이 너무 좁다하면 깊을 리 없는 법이라 하나, 단 하나의 전략없이도 이토록 물이 충분히 고여 있을 줄이야.
弈之爲數 但棋子...
본디 바둑의 수는 대단한 것이 아니나, 바둑돌은...

출전이 3개(!) 나 있는 문장입니다.
1) 山銳則不高, 水徑則不深 : 산이 너무 뾰족하면 높을 수 없고, 물이 너무 좁다하면 깊을 수 없다. <<한시 외전 1권 27>>
2) 물이 충분히 고여 있지 않으면, 큰 배를 실어나르기에는 힘이 부족할 것이다. <<장자 1편 소요유>>
3) 弈之爲數, 小數也... : 비유하자면 바둑을 두는 것이 비록 작은 기술(弈之爲數)이지만~ <<맹자 권11 고자장구 상 (告子章句 上)>>

뭔가를 더 말하려는 주유의 말허리를 끊고 누군가 외칩니다.

第二步 現在實行!
"제 2보는 지금 당장 실행하게!"



그리고 주유의 어깨를 탁!하고 짚습니다. 정체는 바로 499화에 모습을 보였던 장기(=장중경). 제2대 잔병의 암습이 완전히 완치되지 않았는지 인상을 찡그리는 주유에게, 장기는 손권에게서 받은 명인 "주유는 즉시 몸을 뺄 것"을 말하며 이 제2보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레이션. 第二步 來了(제2보가 온다)

다시 시점이 전환되어 성 안의 어느 부대를 비춥니다. 부대원들 가운데 서있는 두목(老大). 두목은 여기 모인 이들이 평범한 이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각 군영에서도 고르고 골라 선별된 이들입니다. 현대의 [특수부대]비슷한 독립부대인 것 같네요.
수십의 전장을 거치며 몸만 온전히 살아남는것도 절대 평범한게 아닌데, 너희들은 그런 와중에서도 공까지 세웠다면서요. 자네들 덕분에 강동은 날로 번성하고, 선조들을 뵐 낯이 생긴다고 칭찬을 계속합니다. 부대는 작지만 우습게 보지 말라고 합니다, 명성이 자자한 여몽도 이곳 출신이라면서.

그렇게 말하며, 두목은 이번에 새로 선발한 두명을 소개합니다. 이번 향산(鄕山) 전투에(맨위의 저 공성) 공을 세운 이들이라고 하는군요.
그 말에 부대원들은 놀라며 고작 2명이서 형주 잔당들을 급습한 그 소부대를 말하는 거냐,라고 두목에게 묻고 두목은 긍정. 두목은 소개를 위해 이 두명보고 한걸음 앞으로 나오라 합니다.
그리고 포권을 취하며 나온 두 명은...



불시인(不是人) - 제갈량과 황월영 by 찌질이 ver2



제갈량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얘기할 때면, 그의 아내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추녀라 기록되어진 아내 [황월영]
옛 민담이나 설화에서부터 시작해, 현재의 무수한 삼국지 미디어믹스물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를 들어 이 [추한 외모]를 각색하고, 포장했습니다.

설화나 민담에서는, 이 [추한 외모]를 하나의 교훈으로 빗대었습니다. 외모나 겉에 중시하지 않고 본질(내면)을 중요시한 제갈량의 깊은 뜻이라 했지요.
삼국지를 다룬 요즈음 미디어 물에는, 여기에 살짝 더 각색을 합니다.
1) 사실 황승언이 제 딸이 [추녀]라고 소문을 퍼트린 것. 황승언은 옥석을 가려내고자 이리 한 것이며 사실 황월영은 미녀다. 따라서 제갈량은 겉보다 내면을 중요시해 미녀 황월영을 얻었다.
2-1) 당대의 미녀관은 지금과는 다르다. 그 때의 추녀라고 하는게 현대적으로 보면 미녀일 것이다.
2-2) 황월영은 당대 한족이 아닌, 인도계 피가 섞여서 경원시 받은 것이 불려져 추녀가 된 것이다.

미디어를 보면 아시겠지만, 심하다 싶을 정도로 [추녀]라는 점을 어떻게든 포장하고 넘어가려 합니다. 하지만 아직 작가주의가 넘치고, 자본주의에 굴복하기 전의 진모는 그런 "메르헨"적이거나 "미담"을 아예 정면에서 부정합니다. 그는 이 결혼을 속물에 찌든 남자와 추녀의 결혼이야기로 그려버리지요.

제갈량은 입신양명을 위해 형주에 와서 한창 진법에 대한 강론을 펼치던 중이었습니다.그러던 와중 말장인 위연에게 "책만 배운 탁상공론만 펼치는 서생이 뭘 알겠냐"라고 도발당하고, 나름대로 자존심 세워보겠답시고 뻗대다가 뺨을 맞고, 심지어 목숨까지 위협당합니다.
서책조차 내팽개치고 도망쳐와 도로에 주저앉은 제갈량에게 황충이 다가옵니다. 황충은 그에게 입신양명하기 위해서는 명성을 쌓으라며 충고하지요.제갈량은 바로 이 [명성]을 위해 형주의 명사 황씨집안으로 들어가, 황승언의 유명한 딸..추녀 황월영과 결혼하게 됩니다.
황승언은 집안의 골칫거리를 치워서 좋고, 제갈량은 명성(형주 유력인사의 인맥, 위명)을 쌓게 되어서 좋고
하지만 이 결혼은 뿌리부터가 잘못된 결혼이었습니다. 결혼식 당일날, 부인 황월영은 남편에게 따져묻습니다, 대체 추녀라고 소문지 자자한 자기와 왜 혼례를 올렸냐며.
그리고 남편 제갈량은 아내의 추궁에 못이겨 왜 자신이 세간에서 유명한 추녀와 결혼했는지 털어놓게 되지요.

부부사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면서도..제갈량은 황월영에게 사죄를 합니다.
당신 집안의 명성때문에 결혼해서 미안하다고.
그래도 좋은 남편이 되겠다며..결혼식 첫날에 눈물을 훔치는 거죠.

어찌보면 남들이 이렇게 저렇게 포장하면서 타협하고 넘어가려는 것을 거부하고
과감하게 건드리는 진모 다운 부부묘사였습니다.

근데, 전 오히려 이 부부 묘사가 좋다고 느껴졌습니다.
"사실 미녀였다"라는 얄팍한 포장지를 씌워놓고 어떻게든 어물쩡 넘어가려는 것보다

추녀와
그녀의 집안을 바라보고 결혼한, 솔직한 남자의 사랑이니까요.

결혼 자체는 다분히 속물적이고 더럽고 뒤틀렸지만..그 시작도 울부짖음으로 시작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책임감이 사랑으로 변해가는..전개. 서로가 못남을 알기에 더욱 숭고한 사랑을 한다는 그런 전개가 좋아요. 이것저것 작위적이고 가식적인 포장이 아닌 있는그대로를 인정한다는..

그리고 이 남자는 자신의 말을 지켰으니까요.

역사대로라면 제갈량은 첩 하나 두지 않고,
평생 남편은 부인을, 부인은 남편을 서로 예우하고 사랑하며
제갈첨이라는 사랑의 결실을 맺은 거니까.

불시인도 한번 번역해보고 싶은데, 워낙 제 중국어 실력이 미천해서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했는지 잘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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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해둔 것 재업합니다. 이건 정발가능성이 없으니 고소도 없을거라...믿습..니..다...

화봉요원 E-Book 리디북스 런칭 by 찌질이 ver2

제가 생각하기에 한동안 출간이 지연되었던 이유는 다른 이북 사이트에 관한 출판을 두고 재협의를 하느라 그렇게 된 것 같다고 봅니다.
아무튼, 문제가 해결되어 출간취소되었던 화봉요원이 이제는 네이버북스 뿐만 아니라 리디북스/북큐브 등 여러 이북 사이트에도 정식 런칭되었으니, 이제 곧 후속권도 나오겠네요. 아무튼 잘 풀려서 최신화 507화까지 물흐르듯 잘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추가 - 길찾기 트위터 출처
원 저작권사의 요청으로 네이버 시리즈(구 네이버북스)의 화별 서비스는 일시 중지되었습니다. 화별 서비스도 다시 재개하기위해 협의 중입니다
화봉요원 후속권은 12월 출간예정입니다


고소문제 때문에 번역글 내립니다. by 찌질이 ver2

최근 불거진 고소문제 때문에 번역글 내립니다. 블로그를 연 시작은 취미번역이였지만 출판사 분들과 원작자님의 권리를 많이 저촉해버렸습니다.

화봉요원도 길찾기(이미지프레임)에서 정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은근슬쩍 10~14페이지 정도 가량 불법으로 번역한 뒤 공시해서 죄송합니다.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공공연히 저작권 법을 위반해서 다시금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표인]이란 작품을 불법번역해서 죄송했습니다. 앞으로 번역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화봉요원 리뷰는 글로만 작성토록 하겠습니다.

507화 추가해석 및 오역보고 by 찌질이 ver2

한 달 전쯤인가,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랑 얘기를 나누다 친구 입에서 “아만보”라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아만다’처럼 외국여자 이름의 일종으로 생각했지만, 이게 신조어였더군요.
“아는 만큼 보인다.”를 줄여서 “아만보”라고 부른다 하네요. 507화를 다시 보면서 이 “아만보”를 뼈저리게 절감했습니다. 제대로 이해를 못해서 1차적으로 해석한 것도 있고, 오역한 것도 상당히 많군요.
각설하고, 시작하겠습니다.

1. 우선 제목 “蜀門大開”

진모 작가는 하나의 문장에 여러 가지 뜻을 담는 걸 즐겨 씁니다. 이 蜀門大開 또한 2가지 뜻으로 해석 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제가 처음에 써놨던 것처럼 글자그대로 촉지(蜀地)로 향하는 “문”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문(門)의 다른 용례로 “가족, 집안, 문중, 일파”의 뜻을 나타냅니다. 무협지에서 흔히 쓰는 표현인 일문(一門)도 이 뜻에 해당합니다. 이를 연결해 제목을 해석해본다면 蜀門大開는 “촉지의 유(劉)씨 일파가 전면에 나섰다”라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제목을 1차원적으로 “촉으로 향하는 문이 활짝 열리다”라고 해석해서는 안되었습니다. 그냥 한자 병음을 적는 게 나았어요. 제가 처음에 한 것은 뜻을 한가지로 고정시켜버린, 명백한 오역입니다.

2. 초반 경구에 있는 동오(東吳)사람들의 대화

화봉요원의 경우, 전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일반 백성들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는 방식을 종종 택합니다. 백성끼리의 한담을 통해, 전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쫙 요약하고, 작가가 하고싶은 말을 대신 하기도 합니다.
한 백성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對, 咱們一向與那些형주難民勢成水火,
그래, 지금까지 저 형주 난민들하고 우리는 물과 불같은 사이였잖아(=상극)

雙方仇恨太深, 若非조조南下, 荊民豈會留此
서로간의 원한이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데 조조의 남하가 아니었으면 형주사람들은 여기에 머무르기냐 했겠냐.

現在유비與강동結盟 情況的確有了改善,
지금은 강동이 유비와 결맹을 맺어서 확실히 사정이 나아졌지.

暴亂少了 應該是難民走了不少
소요가 줄어든 걸 보니, 적잖은 난민들이 떠난 모양이군.

“형주 난민”과 “우리(=동오 사람들, 이하 ”우리“로 통일)”의 관계는 지금까지 물과 불같은,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상극 사이였다고 고백합니다.
이에 유비와 결맹을 맺음으로서 “사정이 나아졌다”고 이야기하지만 이는 상대적인 것이지, 100% 서로 화해했다는 게 아닙니다. 형주 난민들이 강동에 흘러들어와 소요사태를 마구잡이로 일으키던 그때 보다는 “사정이 나아진” 거죠,
헌데 마지막에선, 잠잠해지나 싶었던 형주 난민들이 다시 유비에게로 돌아간다고 하는군요. 심지어 유표의 속관들마저 대부분 유비에게 귀순하는 상황이라 말합니다.

이를 통해 위 대화는 단순히 “형주 난민”과 “우리”의 대치만을 말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은유로서, “형주vs우리들”의 구도를 빗대어 그 뒤에 있는 유비와 손권의 관계를 겨냥하는 노림수입니다. “형주 백성”들이란 뒷배가 형주의 이익을 대변하다시피 하는 [유비]와, 동오 세력은 물과 불같은 사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는 거죠. 더군다나 현재 유비는 손권에게 구금된 상황이니 이제 대화할 여지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즉, 형주vs동오는 유비가 결맹을 맺음으로서, 일견 그 갈등이 완전히 회복된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이를 둘러싼 갈등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으며 방식만 달라진 채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3. 




아 이부분..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었는데 알고보니 손권이 말하는 부분도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있더군요.
첫째는, 성지(聖旨)와 연결지어 해석한 것으로, 유표의 일을 논하며 유비가 형주를 다스리는 목(牧)이 되었음을 논하는 것이고,
둘째는, 죽은 손책 형님의 뜻을 이은 이는 오로지 손권 자신뿐이라는 겁니다. 매번 형주 문턱 앞에서 빈번히 막혀 빈손으로 돌아와야만 했던 형 손책. 그 형이 죽은 뒤로 동생은 형님의 가장 친한 친우였던 주유와 함께 절치부심합니다. 그리하여 주유는 최유지책(最瑜之策)을 통해 조인군을 물리고 형주를 손에 넣었으며, 손권은 유비를 붙잡아 자신의 밑에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자신의 밑에 있는 유비가 형주 목(牧)이 되어 형주지배에 대한 정당한 용인까지 받았으니, 마침내 손권은 형의 유지를 계승한 것입니다.
두 번째 해석을 알고 나니 참, 뭐라고 해야하나 머리가 띵,하고 울리더군요. 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간 제가 멍청이 같기도 하고, 그리고 이런 손권의 감회가 남다르기도 하고..

밑 부분에서 유비는 “더는 유씨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내가 형주 맡아보는 것”이라 하는데, 사실 유씨는 아직 많이 남았지요. 대표적으로 서촉의 유장이 그렇고요.
하지만 손권의 경우, 손견의 자식들 중 작중 시점(209년)에서 살아 있는 이는 손권이 유일합니다. 삼남 손익은 204년에 죽고, 사남 손광도 20세에 급사하고..

<오역 수정>

第二道聖旨 封姐夫爲형주목, 即日上任. 繼承亡兄之志 恭喜姐夫
오역 : 두 번째 성지는, 자형을 형주목으로 봉하며 당일부로 취임하라는 군요. 돌아가신 형님의 뜻을 계승하게 되었군요. 축하드립니다, 자형.
고친 해석 : 두 번째 성지에선, 자형을 형주목으로 봉하며 당일부로 취임하라 하니, 이제 돌아가신 형님의 뜻을 잇게 되었네요. 축하드립니다, 자형.

중의적은 느낌을 주기 위해 고쳤습니다. 중국어 실력이 너무 못나네요..ㅠㅠ

형주乃亡兄유표之地 今유기已逝 劉氏無人,
오역 : 형주는 돌아가신 유표 형님의 영지이나, 지금 유기가 죽어 영지에 다른 유씨가 없으매
고친 해석 : 형주는 돌아가신 유표 형님의 영지이나, 지금 유기가 죽고 다른 유씨가 없으매

너무 과하게 의역을 했습니다. 영지에 다른 유씨(劉氏)가 없는 게 아니라, 유씨 친족에 마땅한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照顧不周 望姐夫見諒 : 대접이 변변치 못한 점은 자경께서 양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照顧는 “돌보다”의 의미로 쓰였지만, 다른 의미로 쓰이면 “고객이 물건을 사러 온다”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관련된 중국어 관용구로는 “照顾生意”가 있으며 “(물건을 많이 사서) 장사 좀 밀어 주세요”라는 뜻입니다. 손권은 한동안 사마의 밑에서수학한 적도 있었지요. 말하자면 손권은 사마의의 제자라 해야할까요. 이렇게 말하는 것에서부터 장사치의 일면이 언뜻언뜻 드러나는군요.
추가로 언급하자면, 화봉요원의 손권은 특이하게도 “거짓말”이나 “둘러대기”를 잘 못하는 인물입니다. 주위에서 이를 지적하기도 하죠. 헌데, 비슷한 골자의 말을 손권의 스승, 사마의도 한 적이 있습니다.



“정직한 사람은 종종 남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법이지”(13권 105화 중에서)

이를 보면 그 스승에 그 제자인 듯..

4.

하.. 이 부분도 오역을, 그것도 하필이면 가장 치명적인 오역을 저질러서.. 일단 오역 수정부터 먼저 보고하고 해석하는게 편할 겁니다.





<오역 수정>

殘兵敗將, 一臉窮寇
오역 : 잔병패장, 꼭 궁지에 몰린 생쥐 같은 몰골이군요. (개 좆병신 번역)
고친 해석 : 잔병패장, 막다른 곳에 몰린 적이거든요.

우선 치명적인 오역은 단순히 “窮寇”를 사전적인 의미 “궁지에 몰린 도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더해 저는 여기서 의역까지 해서 “궁지에 몰린 생쥐 같은 몰골”이라고 했군요. 참..진짜 못난 번역입니다. 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정말로 싸구려 번역인데다 오역까지 더해져서 똥에 똥을 더했군요. 왜 이게 잘못된 해석인지는 앞문장을 보시면 압니다. 바로 앞 문장에서 손권은 주태를 말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不許生事 (문제를 일으키면 안되요.)”
따라서 [殘兵敗將, 一臉窮寇]는 앞 문장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문장이 되어야합니다. 문제를 왜 일으키면 안 되는가? 잔병패장인 요원화가 막다른 곳에 몰린 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窮寇의 해석을 추가해야 합니다. 뒤에서도 다시 설명할 테니 여기선 짧게 요약하겠습니다. 窮寇의 속뜻은 “막다른 곳에 몰린 적을 필요 이상으로 핍박하지마라. 그러다 적이 필사적으로 저항하면 도리어 아군의 피해가 커진다”라는 뜻입니다.
즉, 손권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들판을 불태우던 요원화는 재가 되어 바람에 날아갔지만, 그래도 괜히 궁지에 몰린 녀석 건드리다가 피 보긴 싫으니 문제 일으키지 말라는 제지입니다.

當風揚其灰 你的時代 已終結了
오역 : 바람에 재를 날려 보내던 순간, 당신의 시대는 끝을 고했습니다.
고친 해석 : 재가 바람에 날아가던 그 순간, 당신의 시대는 끝을 고했습니다.

누군가가 능동적으로 바람에 재를 날려버리는 행위가 아니라, 불이 불태우고 뒤에 남은 재가 바람에 실려 날아가는 겁니다. 이를 잘못해석 했기에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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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殘兵敗將

일단 잔병과 패장은 다음과 같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殘兵은 잔병 두령 시절의 요원화를 <<과거>>
敗將은 유비의 시위(侍衛 ; 호위무사)가 된 조운 <<현재>>
두 단어를 연결시켜서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아우르는 거죠. 여기서 패장은 뭐...굳이 연결하자면 손권이 한때 몸담고 있던 암살조직 패장(敗將)과도 결부시킬 수 있겠지만, 여기서의 패장(敗將)은 그것보다는 호위무사로 전락한 조운의 처지를 말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지금 유비는 손권에게 구금당해 포로가 되었으니, 당연히 유비의 호위무사인 조운도 주군 따라 포로가 된 셈인 것이죠. 전쟁하나 하지 않았는데 싸우기도 전에 조운 장군은 이미 지고 들어간 패장(敗將)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리고 이 두 단어를 나란히 배치함으로서 손권 역시 잔병 두령 = 요원화 = 조운 임을 알고있다는 암시도 되겠네요.
하지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후세에 조운은 상승장군(常勝將軍)이라 불립니다. 항상 승리하며 불패한다는 의미에서 말이죠. 그걸 알고 보면 저 손권의 말은 참 아이러니해요.

B) 窮寇

이 단어 또한 출전이 [손자병법]입니다. 아..진짜..손권은 뭐 말할 때마다 손자병법, 손빈병법 끄내 쓰니 진짜...
<<손자병법>> 제7편 <군쟁(軍爭)>편에 나오는 문장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여덟째는 막다른 곳에 몰린 적을 성급히 공격하지 않는 궁구물박(穷寇勿迫)이다. 이 8가지가 바로 적과 맞닥뜨렸을 때 구사하는 통상적인 용병 원칙이다.”

이 위사필궐(圍師必闕)을 장예는 “삼면을 포위하고 일각을 열어 생로를 터줌으로써 적이 사력을 다해 싸우지 않도록 한다”라고 풀이했습니다. 자고로 인간이란 궁지에 몰리면 사력을 다해 저항하는 법이니 퇴로를 만들어 주지 않고 싸우다간 아군의 피해 또한 커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러니 적을 포위하면 섬멸하기 보단 적당히 퇴로를 만들어 줘서 승리를 추구하는 쪽이 옳다는 용병법입니다.
사회생활에서도 충분히 쓰임직한 용병법이죠. 부하를 되는대로 압박만 하다가는 결국 “너죽고 나죽자”라는 식으로 나와서 큰 피해를 보는 법이니까요. 누구를 갈굴 때도 빈틈을 만들어둬서 숨통을 트이게 해줘야지, 그러지 않다간 언제 뒤통수 맞을지 몰라요.
손권은 이미 원하는 것, 유비를 얻은 상태입니다. 유비는 구금당했고 사태도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지난날 연회에서 요원화가 상 좀 집어던진 거 가지고(501화 참조) 빚을 받아내겠다며 집적거리다간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인 요원화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니 가만 놔두라는 거죠. 특히 손권은 요원화의 정체, 잔병 두령이란 걸 알고 있는 상태니 더욱 더 경계할 수밖에요. 요원화가 홰까닥 돌아서 싸우기라도 했다간 병력은 병력대로 손실을 보고 유비도 뻗댈지도 모르니까요.

C) 當風揚其灰 : 바람에 재가 날아가던 순간.

출전은 한(漢)대 악부의 시 有所思(그리운 님)로서, 전쟁터에서 부르던 군가인 요가18곡 중 하나에 해당합니다.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有所思 그리운 님>
有所思 乃在大海南
그리운 님, 큰 바다 남쪽에 계시네
何用問遺君
무엇을 보내 그대 안부 물을까하다,
雙珠玳瑁簪 用玉紹繚之
쌍주대의 모잠, 옥으로 칭칭 감았는데.
聞君有他心 拉雜摧燒之
그대 다른 마음 있다는 말 듣고 마구 분질러 불살라버렸어요.
摧燒之 當風揚其灰
분지르고 태우고 나니, 그 재가 바람에 날아가는 군요.
從今以往 勿復相思 相思與君絕
이제부터는 다신 생각하지 않으리. 그대를 생각하는 것도 끊어버리리.
雞鳴狗吠 兄嫂當知之
닭이 울고 개가 짖는 법인데, 형수도 당연히 이 일을 알겠죠.
秋風肅肅晨風颸
가을바람 싸늘하고 꿩이 짝찾는 소리에 마음 심란한데
東方須臾高知之
동방이 곧 밝으면 어찌 된 연유인지 알 수 있겠죠.

시의 화자는 여인입니다. 그리고 여인이 마음에 둔 정인은 저 멀리 타지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연인의 안부를 묻기 위해서 예물인 모잠(비녀)를 준비합니다. 옥 하나를 감을까? 두 개? 세 개? 님 생각하는 마음이 절절해 몇 개를 감아도 성에 차질 않아요. 그래서 “칭칭 감을”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주 많은 시간이 경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런데 그녀의 귀에 소식이 들려옵니다, 마음에 둔 정인이 다른 마음이 있다고요. 바람을 피는지, 아니면 애정이 식었는지는 모르지만 남자는 딴 맘을 먹었습니다. 이에 화자는 분노합니다. 그 분노가 온 몸을 잠식해서 정인에게 보내려고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던 비녀를 미친 듯이 부수고 분지른 다음, 이로도 모자라 불에 태워버립니다.
비녀는 불에 타 재가 되어 바람에 날아가는데요, 이를 바라보며 여인은 변심한 연인에게 단호히 절교를 선언합니다. 다신 그리워하지 않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하며, 님에 대한 감정을 “끊어버린다”고 고하죠.
헌데 그렇게 단호히 선언하던 그녀는 다시금 망설입니다. 더는 생각하지 않겠다고 되뇌이면서도, 한편으론 “설마..”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죠. 우리 같이한 세월이 얼마인데 설마 정인이 다른 마음을 먹었겠어? 설마, 정인이 날 두고 다른 여인이랑 바람을 피겠어?
그런 번뇌가 머리를 괴롭히는데 닭 우는 소리에 잠은 쉬이 오질 않고, 꿩이 제 짝을 찾으려 우는 소리에 님이 생각나 마음은 심란하기만 합니다.
마지막에 여인은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합니다. 해가 뜨면 사실이 밝혀질 테니, 그때 가봐야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시는 끝이 납니다.
여성의 심리가 변해가는 과정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열렬한 사모 - 분노 (그로 인한 파괴) - 단념, 절교 - 미련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섬세한 필치로 캐치해내었어요.
화가 머리끝까지 솟아, 사랑의 산물인 비녀를 재로 만들 정도로 파괴했으면서도.. 끝끝내 그 사랑을 버리지 못하는 여인의 미련함이란..

위의 시를 다 읽어 보시면, 손권의 나레이션이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겁니다. 다시 한 번 읽어 보도록 하죠.
當風揚其灰, 你的時代, 已終結了 : 바람에 재가 날아가던 그 순간, 당신의 시대는 끝을 고했습니다.
이 부분도 크게 1개, 곁다리로 1개 해서 중의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C-1) 크게는 “손숙”의 변화를 그리고 있다.

시의 화자와 손숙의 상황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집니다. 손숙은 요원화를 사랑했습니다. 요원화에게 구해진 그 순간부터, 타지에서 요원화를 기다렸지요. 미색이 사라질 20년간이나요. 그리고 손권 또한 누이의 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당초 노숙이 혼인 동맹을 제의했을 때를 생각해 주세요. (비록 유비-요원화 관계를 이간질 할 목적이 있었다지만) 노숙은 혼인할 사이로 요원화와 손숙을 짝지어 주려고 했습니다.
요원화가 YES라고 했으면 그대로 혼인이 성사되었을 것입니다. 유비도 바보는 아니니까 말이죠. 하지만 요원화는 [주공의 성취를 좇는 노예]이기에 주군과 손숙이 혼인토록 했습니다. 손숙은 마음에 둔 정인이 다른 마음(=대의를 우선함)을 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요원화에게 호소해요. 정녕 자신을 여기에 남겨두고 넌 또 떠날거냐고..
그리고 요원화는...




"가십시오,주인마님主母."

마지막 남은 손숙의 마음마저 짓뭉게 버리지요. 그리고 손숙은 유비와 결혼하게 됩니다. 나레이션 부분이 當風揚其灰 부분을 적은 것에 유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시의 화자는 바람에 재가 날아가는 것을 보며 “끊어버리리라”라고 절교를 선언합니다.
즉, 위의 나레이션은 손숙이 조운에게 고하는 절교선언입니다. 자신이 애지중지 여겼던 비녀(=마음)은 이미 사라지고 재가 되어 날아갔다고. 당신과 내가 함께했던 시대는 이미 끝을 고했고, 나와 당신 사이에는 더 이상 아무런 감정도 남아있지 않다는 완벽한 절교.

C-2) 곁가지로는 요원화의 처지를 나타냅니다.

화봉요원 초반부 기억나세요? 요원화는 단신으로 동탁 목에 칼을 들이밀기도하고, 전신 여포와 1:1로 싸워 불패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들판을 맹렬히 태우는 불길]이란 이름에 가히 걸맞았죠.
그런데 점점 이 요원화는 주공의 성취만 좇게 되었습니다. 주공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던 여인도 내치고, 한때 사랑했던 여인 번씨가 죽는걸 지켜봐야 했어요. 사마의를 떠나 태양 아래로, 빛의 세계로 떠나왔건만..



그는 노예로 팔아치우고 또 팔아치우기만 할 뿐.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그는 산송장이 되어가는 겁니다. (1권 초반부 온몸에 사슬을 걸치고 산송장이나 마찬가지였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시길.) 그러니 손권이 그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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